“개미처럼 일하고 거미처럼 사라지다” 기지촌 공간에 각인된 기억들에 대한 오마주, 그리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위한 의무의 여행
철거를 앞둔 경기 북부의 미군 기지촌, 멀찌감치 포성과 전투헬기 소리가 메아리친다. 카메라는 이름 없는, 혹은 이름만 남은 무덤들이 그득한 숲을 지나 폐혀가 된 유령 마을로 내려온다. 마을에는 신체에 각인된 역사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세 명의 여인이 있다. 바비 엄마 박묘연은 30여 년간 선유리 선유분식에서 햄버거를 만들어 왔다. 박인순은 의정부 뺏벌의 쇠락한 좁은 골목길에서 폐휴지를 주워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흑인계 혼혈인 안성자가 있다. 그녀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친구 세라를 회상한다. <거미의 땅>은 인물들의 분절된 기억을 따라, 망각된 기지촌의 공간 속에서 ‘의무의 여행’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