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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필름 

이미지 없음
분류
제작사  | 기타
대표자
신상옥
영업상태
폐업
대표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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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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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세븐 엎스> 외 30편
소개
1960년 신상옥 감독이 설립한 영화사.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형태에 가장 가까웠던 첫 번째 기업형 영화사로 1960년대 한국 영화 중흥기를 이끌었다. 〈악야〉(1952)로 데뷔한 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신상옥 푸로덕션’에서 15편의 영화를 만들었던 신상옥 감독은 1960년 신상옥 푸로덕션을 신필름으로 이름을 바꾸고 미국 콜럼비아 영화사를 모델로 전속 배우, 작가, 감독, 촬영 감독, 녹음 기사까지 영화 제작에 필요한 인력을 자체 조달하는 영화 스튜디오를 건설한다. 신상옥의 아내인 최은희를 비롯해 김승호, 신영균, 이예춘, 남궁원, 태현실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신필름 전속 배우로 활동했으며 용산에 지어진 1천 평 규모의 촬영소에는 촬영 스튜디오와 녹음실, 편집실, 영사실, 부설 연기자 양성소 등을 두었다. 1961년부터 1970년까지 쏟아낸 작품 수는 102편이며 신필름 휘하에 있던 안양필름이 제작한 영화까지 합하면 150편이 넘는다. 신필름의 영화 제국은 1961년 〈성춘향〉과 함께 탄생했다. 1961년 홍성기 감독, 김지미 주연의 〈춘향전〉과 맞붙은 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성춘향〉은 서울에서만 40만 명을 동원, 〈로맨스 빠빠〉(1960)로 제작자 입지를 굳혀가던 신상옥 감독이 신필름의 물적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1966년 신필름은 홍콩을 비롯한 해외 합작 영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안양종합촬영소를 세워 몸집 불리기에 나섰지만 정부의 지원이 약속대로 이뤄지지 않자 재정적 위기에 몰리기 시작해, 안양종합촬영소는 산업은행으로 넘어가고 현대식 설비들이 즐비했던 스튜디오는 황폐화됐다. 1960년대 중반 이후 흥행작들도 적어지면서 설상가상의 위기를 맞아 신필름은 1970년 회사 규모를 줄이고 안양영화주식회사, 1973년 주식회사 신푸로덕션 등으로 연명하지만 전성기는 이미 지난 후였다. 결국 1975년 홍콩과 합작한 〈장미와 들개〉의 예고편 중 검열 과정에서 삭제된 키스 장면을 극장에서 상영했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영화사 말소 명령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하지만 〈폭군연산〉(1962), 〈이조여인잔혹사〉(1969) 등의 사극과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벙어리 삼룡이〉(1964) 등의 문예 영화에서부터 〈로맨스 그레이〉(1963)나 〈빨간 마후라〉(1964) 등 현대적인 코미디와 액션 영화를 아우르는 신필름의 필모그래피는 한국 영화사에 장르 영화의 초석을 다지는 중대한 역할을 했다.
상영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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